PARK MI JIN

magic moment

전시기간 2021.03.19 - 2021.04.30
  • 전시소개
    • 이정입경移情入景가인佳人
       
      수적천석水滴石穿이라는 말이 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다.
      박미진은 실로 수적천석에 어울리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백옥같은
      아름다운 여인상은 오랜 시간 동안 수백 번 색을 쌓아올려 완성시킨 작품이다.
      이것은 작은 변화가 모여서 큰 변화를 만든다는 작가의 신념에 기인한다. 그녀의 중채법은
      맑고 옅은 색채를 사용하기에 언뜻보면, 그 인고의 시간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하지만 박미진은 타인이 작업과정을 인식하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색이
      발색 될 때 까지 끊임없이 색을 쌓는 반복적 행위를 하며 그 색을 기다린다.
      그녀는 효과적인 기법이나 안료를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런 점이 진실한 화가에 닿아 있다.
      작가는 맑은 색을 한 겹 한 겹 쌓으면서 동시에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작품에 쌓아간다.
      가끔씩 자신의 작업이 단순히 예쁜 작품으로 폄하될 때는 슬픔이 밀려온다.
      자신의 인간에 대한 탐구와 사유가 일순간 증발해버리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리라.
      박미진은 대학 때부터 인물화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2002년에 큰 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인간 탐색을 지속하며 주변인’, ‘익명인등의 외형外形을 묘사하여 인격과 내면까지 보려주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표현법에 깊이 천착하였다. 그래서 2006년까지 전통적 기법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젊은 작가라 명명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통적 기법으로 형상에 핍진하여 묘사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쏟아졌다.
      그때까지의 작업 방향으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는 정서를 담는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작품화된 한 개인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들 사이에 감정적 거리의 천차만별은 박미진이 드러내고자 했던 인간의 동일한 감정,
      즉 칼 융C. G. Jung원형(집단무의식)’과 같은 정서를 수렴하지 못하고 파편화 시켜버렸다. 그래서 작가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주변인이나 익명인작업을 잠시 미루고, 2008Free as wind전시에서 모든 사람이 아는, 그래서
      모든 사람이 감정적 거리가 유사한 슈퍼맨이나 ‘ET’, ‘마릴린 먼로등의 유명인물을 작품에 끌어와 집단무의식적 정서의
      동일성을 경험하도록 유도하였다
      불가에서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사벌등안舍筏登岸)’라는 말이 있듯이,
      박미진은 유명인물 작업으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전통적 한국화 기법과 규율에서 과감히 탈피해 자신에게 맞는 변용된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작가의 불안정한 정서는 박제된 아름다움(나비)을 작품 안에 고정시키는 표현을 통해 반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이 시기의 나비는 현재의 나비와 의미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나비는 아름다움의 대언자代言者로 기능이 훨씬 확대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일순一瞬 작가는 어떤 깨달음을 얻은 듯 하다.

      Free as wind전시 이후 박미진은 유명인물 작업을 폐기하고 이정입경移情入景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을 머금어 에 투사하는, 의미()을 내재하여 경관()을 표현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굳이 유명인물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의 원형적 인물이 있다고 믿고 그 인물을 현실 세상에 드러내길 간절히 원했다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미의식을 현실화하여 
      모든 사람이 아름다움에 대한 원형의 정서를 공유하길 희망한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보는 사람의 어두운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힘이 담겨 있길 기원하며
      한 겹 한 겹 색채와 시간을 작품에 중채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박미진의 작품은 선화禪畵와 닮아 있다. 선화는 그림 속에서
      나를 비우고 하심을 통해 무념과 무아를 드러내는 그림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해질 때 생명력을 얻게 된다.
      박미진이 작품으로 도달하려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그림을 통한 평정심.
      따라서 그녀의 작품을 현대적 선화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안진국 _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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